토키타 유스케 (朱鷺田祐介)
TRPG 디자이너. 2004년 [크툴루 신화 가이드북]의 [크툴루 신화] 소개를 시작으로 [크툴루 신화 초입문] 등을 담당하여 지난 몇 년간 매년 러브 크래프트 생일(8월 20일)과 사신기(3월 15일)에 맞춘 이벤트를 모리세 료(森瀬 繚)와 함께 공동 개최하고 있다.

크툴루 신화의 창시자 러브크래프트
크툴루 신화를 이야기할때 창조자인 러브 크래프트의 이야기를 빠트릴 수가 없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종종 HPL이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며, 자기가 보낸 편지에도 HPL이라 서명을 했습니다.
크툴루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러브크래프트에 대해서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에 대해서 알았다고 크툴루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다르다고 밖에 말 할 수 없지만, 창조자인 그에 대해서 알아본다고 해도 손해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약력
1890년 8월 20일, 미국 북동로 연안 로드 아일랜즈주 프로비던스에서 태어난 러브크래프트는 아버지의 입원을 계기로 프로비던스에서 살고 있는 외할아버지이자 부유한 사업가인 '위플 밴 뷰런 필립스'의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할아버지의 서고에서 책을 즐겨 읽었으며, 6살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초등학생일때 할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급사했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는 어머니와 둘이서 작은 아파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관심을 과학으로 돌린 러브크래프트는 지역 신문에 과학 기사를 기고하거나 천문학 정보를 정리한 신문을 발행하기도 합니다.
10대 중반부터 러브크래프트는 몸이 병약하여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시기를 보내지만, 20대 중반 애독하는 잡지의 독자 투고란에 투고를 시작했다가 단골과 이야기를 하게된 것을 계기로 아마추어 창작 커뮤니티(아마추너 저널리즘)에 들어가나 창작을 재개합니다.
1923년 공포 소설과 판타지를 전문으로 하는 펄프 잡지『Weird Tales』가 창간되었을때 러브크래프트는『다곤』을 비롯한 5작품을 보냈는데, 전부 채용되어 게재됩니다.
이후 러브크래프트는『Weird Tales』를 중심으로 기존의 인공 신화를 기반으로한 SF적 느낌이 강한 현대 공포와 환상 공포 소설을 발표합니다.『크툴루가 부르는 소리』『광기의 산맥에서』『인스머스의 그림자』등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1924년에는 아마추어 저널리즘을 통해 만난 연상의 여인 '소니아 하프트 그린'과 결혼하고, 뉴욕으로 떠났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별거. 그 이후 러브크래프트는 프로비던스로 돌아와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가 1937년 병사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1935년에 집필된『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당시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첨삭과 대필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으며, 작품 쓴게 적고 중편과 단편이 많아 생전에 나온 책은 단 한 권. 현재 그의 책으로 유통되는 대부분은, 그의 사후, 그의 업적을 기리던 연하의 친구인 '어거스트 델레스' 일행이 출판사 아캄 하우스를 만들고 출판하게 됩니다.
유물론과 꿈꾸는 자
러브크래프트는『크툴루 신화』라는 신화가 대표작이지만, 그는 유물론자를 자칭하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사람이었습닏.
아마추어 시대 초기에 몽환적인 이세계 판타지를 쓰곤 했지만, 이후 새로운 공포 소설을 목표로 하고 현대를 무대로 한 SF호러 작품을 쓰게 됩니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도입하여 의사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남극 탐험, 관동 대지진, 태평양에 가라앉은 초고대 문명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눈에 띄는 이유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활약한 러브크래프트에게 그것들이 당시 파급력이 큰 최신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유물론자를 자칭하면서도,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감성에 얽매이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창작에 있어서 자신의 경험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단편『니알라토텝』은 그가 꾼 꿈이 그대로 작품이 된 경우이며, 마찬가지로 단편인『레드훅의 공포』는 소니아와 별거한 이후 자신이 뉴욕 생활 도중에 느끼던 것을 공포로 적은 것. 보기에는 완전한 창작같아도 많은 장소와 장면에서 이미지의 근원인 경험이 존재했습니다.
『마녀의 집에서의 꿈』의 모델은 세일럼에 있는 '나다니엘 호손'의 실제 저택이며,『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의 무대는 러브크래프트가 사랑한 프로비던스,『축제』의 무대인 킹스포트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던 마블헤드가 모델입니다.
러브크래프트가 꿈을 고집했다는 것은,『크툴루가 부르는 소리』에서 사신의 정신파에 감응한 사람들이 기괴한 거대 도시를 꿈꿨다는 것으로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전적인 작품인『은빛 열쇠』에서 작가의 분신인 랜돌프 카터가 추억의 은빛 열쇠를 사용하며 꿈꾸는 힘을 되찾는 것은 당영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결과적으로, 은빛 열쇠는 크툴루 신화의 아이템 중 하나가 됩니다)
사실 교류가 많았던 러브크래프트
흔히 러브크래프트는 괴짜 은둔형 외톨이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자퇴하고 틀어박혀 지내던 시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사람들이 말하길, 그는 말이 많고 예의바른 인상적인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왜 이런 이미지가 붙었냐면, 그가 편지를 쓰거나 글을 투고할때 자신을 늙은 은둔자로 자칭하고 그런 식으로 연출했기 때문일겁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전기와 연구에 따르면 20대 후반 아마추어 저널리즘 운동(이른마 아마추어의 소설창작)에서 만난 러브크래프트는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했으며, 아마추어 출판 협희 연합의 논평 위원을 맡고 회장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많은 편지를 썼고, 자신의 작품을 친구에게 보내 읽게 해주는 일이 많았는데, 이건 아마추어 저널리즘 시대의 습관과 1920년대라는 시대성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근대 문학 연구에서는 러브크래프트를 아마추어 저널리즘 운동의 거인으로 평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상이 러브크래프트라는 인물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이걸 읽고 "이미지가 다르네"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이미지 그대로네"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이 인물이 현대에도 영향을 주는 창작 신화의 창시자입니다. 그럼 그는 이후 세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
이 부분은 다음회인 "작가들의 향연"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