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다 노부유키의 진 여신전생 4 FINAL와 신화의 세계로 3회: 크리슈나와 인도 신화 진 여신전생




시오다 노부유키의 진 여신전생 4 FINAL와 신화의 세계로
3회: 크리슈나와 인도 신화

塩田信之(NOBUYUKI SHIODA)

안녕하세요, 시오다 노부유키입니다. 매주 「진 여신전생 IV FINAL」에 관련된 두 개의 키워드를 정해서 그 근본과 현대에 미치는 요소 등을 깊이 탐구하여, 「진 여신전생 IV FINAL」의 재미를 해독해보고 있습니다. 개발 스탭들의 담화와 제작 노트 등의 시나리오와 설정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도 소개될 예정입니다.



- 가장 발전된 다신교의 모습

 일본에서는 다신교 문화가 기본입니다. 헌번에「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떄문에 특정한「국가종교」는 없지만「신도(神道)」가 그 개념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인 황실이 신도의 관례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원래부터 천황은 신도의 최고신「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고 하니 황실은 어떤 의미로「신도」자체이기도 합니다. 국내 외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국회의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보더라도 국가의 중추에 뿌리깊은 신도 신앙이 남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민중의 생활 수준에서 살펴보면 「불교국」이라 한들 대개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은 도심에서 신전과 불전 결혹식이 드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죽었을대는 스님에게 경전을 읽게하는「불교식」의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도 기독교를 의식하지 않고 축하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기에 장례식의 예절이 불교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도 적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오랫동안「신불습합」덕분에 신도도 불교도 동일시되던 역사가 있어서 그 경계가 참 모호합니다.

문부과학성이 매년「종교 통계 조사」를 공개하고 있는데, 최근 2014년도 판에서는 신도계의 신자수는 약 9100만명, 불교계는 약 8700만명으로 나와있습니다. 3위를 차지하는 기독교계 신자 수가 약 300만명임을 감안하면 그 차이는 그닥 크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는「신도」혹은「불교」를 신앙하고 있다는 사람은 적겠지만, 그 두개가 국민들에게 침투해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신도」도「불교」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다신교」입니다. 엄밀하게는 「다신교적 양상」과「일신교적 양상」을 뛰고 있다는 어려운 이야기가 되버리는데, 「최고신」적인 존재가 있어도 많은 「신」적인 존재가 어꺠를 나란히 하고 있는 종교관이 기본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냐고 말해보자면「일신교」보다는「다신교」의 범주에 포함되게 됩니다. 원래「다신교」이라는 말은「일신교」의 입장에서 볼때「일신교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신교」라고 말하는 측면에서 볼때는「종교적인 원리로 하나」라는 뜻으로 「일신교에 가깝다」라고 말하기도 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분류 할 것도 없습니다.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일신교」분도 천사는 사도라고 본다고 해도「성모」와「성인」에 대한 신앙에 대해서는「다신교적」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번 테마인 인도를 봐봅시다. 인도의 종교를 뭐라고 묻는다면 뭐니뭐니해도 먼저 말하게 될 것은 「힌두교」입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2011년 인구 조사에서 힌두교도는 79.8%, 이슬람교 14.2%, 기독교 2.3%, 시크교도 1.7%, 불교 0.7%, 자이나교 0.4%라고 합니다. 힌두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신전생 시리즈로 인숙한 「비슈누」나「시바」 등 인도 신화의 신들이 다수 포함된 「다신교」로써「힌두교」는 인도에서는 지금도 널리 신앙시되고 있는 겁니다. 「다신교」의 대표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리스와 북유럽 캘트는, 지금에 와선 기본적으로 신화 속의 존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는 「세계 4대 문명」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시절부터 그 원류가 존재했다고 생각되는「다신교」가 지금까지 발전해온 모습이 힌두교에 있는 것입니다.



- 인도 신화의 탄생

 그건 그렇고『서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삼장법사 일행이 향했던 천축은 인도에 있고, 부처님의 고향이자 불교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도에 현재 불교가 0.7% 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으셨나요.

  인도 종교계가 걸어온 격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시 우선 「인더스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그 이름 그대로 인더스 강 주변에 번성했던 문명으로 그 유역은 기본적으로 현재 파키스탄에 해당합니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등 역사 교과서에 실려있는 유명한 유적도 있는데, 현재까지도「인더스 문자」는 해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명형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3000년대에는 초기의 도시군이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인더스 문명 이전에도 농경과 목축을 포함한 사람들의 집단 생활이 이뤄진 흔적이 있으며, 그건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7000년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옛부터 제사 형식의 종교 의식이 겅행되었고, 유적에 따라 다르지만 불을 사용한 제사와 후의 시바를 연상시키는 「남근 (Linga)」상 등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테라코타의 여신상도 후의 힌두교에서 큰 세력을 만드는 칠모신(브라흐마와 시바, 비슈누, 인드라 등 신들의 짝들) 신앙의 원형으로 간주됩니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쇠퇴하여 멸망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와 함께 유력시되는 이야기는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적어도 인더스 문명의 쇠퇴 이후에는 이 지역에 아리아인이 살게되고, 힌두교의 원형이 된 「브라만교」를 신봉하게 됩니다. 이때 인더스 문명의 종교를 계승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시바의 원형인 「폭풍의 신 루드라」는 브라만교에서 신앙시 되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 뇌신 인드라와 화신 아그니, 수신 바르나 등의 신들이 이 시대에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브라만교가 경전으로 삼고 있는 것은 『리그베다』를 시작으로한「베다 문헌군」입니다. 이름이 멋지기에 게임이나 만화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다양한 신에게 바치는 산문시적인 찬가와 제식의 예절, 축사 등을 중심으로 다수의 문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편찬이 시작되어 기원전 800년경에는 베다 문헌 각각을 설명하는 「우파니샤드」라는 서브 텍스트적인 책들도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이들도 성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도 신화는 이 무렵에는 대략적인 형태가 잡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기원전 2세기 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마누 법전』에 따르면 브라만교의 다양한 법률과 함께 신화가 정교한 형태로 정리됩니다. 창세신화 등도 모였있으니 신화의 틀이 완성에 가까워지는데 요즘에는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와 같은 유럽 문명의 영향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들 하고 그리스 신화와 오리엔트 신화의 영향도 받았다는 생각은 틀림없을 겁니다.



- 불교와 힌두교의 부활, 그리고 크리슈나

 브라만교 시대의 중간에 「불교」가 탄생합니다. 부처님인 가우타마 싯타르타는 브라만교의 근저에 있는 신분 제도(카스트 제도라고 되어있지만, 현재는 바르나 제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에 의문을 느끼고 신분에 의하지 않는 중생의 구제를 주장했습니다.

 불교가 시작된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이 시작된 7세기 정도까지는 브라문교가 약화되고 불교와 자이나교 등의 세력이 우세해졌습니다. 인도 일대에도 힘을 가진 왕조에 의한 중앙 집권 국가로써의 안정적인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던 점도 그러한 상황을 조성시킨 것으로 생각됩니다. 6세기 경부터 훈족의 침입이 시작되고 굽타 왕국이 무너지면서 소국이 난립하기 시작하는, 말하자면 전국 시대에 돌입하여 불교가 소퇴하고 힌두교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덧붙여서 『서유기』의 바탕이 된 현장삼장의 서천취교의 여행은 불교가 약해져가는 시기인 서기 629년에서 645년에 이뤄졌습니다. 여행의 기록으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가 쓰여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10세기 경에 『서유기』에 각색 등이 가해진 사본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브라만교를 계승한 힌두교는 비슈누 신앙을 중심으로 한, 말하자면「신흥 종교」로 시작되었을겁니다. 「종교 개혁」이기도 하지만, 베다 문헌에서 마누 법전까지 본괴가 된 이후 2세기 이후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강한 세력이 되어가는 추세에 영향을 받고 비슈누를 유일신으로 여기는「일신교화」할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힌두교에서는 베다 문헌 외에도「마하바라타」나 「라미야나」라는 서사시를 경전으로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바라타 족의 5명의 왕자가 싸운 민족 분쟁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았고, 기원전 2세기 경까지 원형이 잘 남아있었습니다. 이 책이 경전으로 중요시 되기 시작한 것은 추후에 이야기의 중간에 삽입된 『바가바드 기타』라는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 부분 자체가 이후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바가바드 기타』에 등장하는 것이 크리슈나입니다. 5명의 왕자들 중에서 중심 인물인 아르주나 왕자의 전차에 마부로 타고 있었는데, 마부라는 신분이면서 왕자에게 비슈누 신앙의 본연의 자세를 가르치는 입장으로 등장합니다.
 
 사실 크리슈나는 실존 인물이 모델로 당시 종교 개혁의 중심 인물이었던 신흥 세력 바가파의 족장입니다. 그 파벌의 비슈누 신앙의 요지를 정리한 것이 바로 『바가바드 기타』로 2세기 경에 쓰여진 신판『마하바라타』에 추가 된 것입니다.

 이리하여 바가바타 파는 대세력이 되고, 족장을 이야기의 등장 인물화시킨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아바타라(화신)의 하나로 인정받는 단계가 있었던겁니다. 잘 생각해보면, 비슈누가 직접 모습을 바꿔서 "나를 믿어라"라고 말한 셈이지만, 신화에서는 원래 이런 일이 많은 법이니 신경 쓸 것까지는 안닙니다.


 새로운 힌두교의 가르침으로 비슈누의 힘이 커져가니 다양한 영웅들이 "사실은 비슈누의 화신이었다"라는 부록 설정을 가하여 점점 흡수해갑니다. 『라마야나』의 주인공인 라마 왕자와 사자인간 나라심하, 심지어 붓다인 부처까지 아바타라 중 하나라는 이야기는 불교 자체까지 가져오려는 의도가 느껴지며, 크리슈나와 그 뜻을 이어받는 자들은 참으로 야심적입니다. 힌두교의 틀 내에서도 브라만교 시대에서 비슈누 이상으로 인기가 많았던 시바, 브라마를 매개로 삼아 시뷰누와 일체화시키는「트리무르티」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는데, 기독교의「삼위일체」와 마찬가지로 다소 무리한 구심력 증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뒤 역시 시바는 시바대로 막강한 세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시바의 아들인 상사신 가네샤의 신앙이 강해져가며 여신 신상이 성행한다거나, 심지어 인도가 이슬람 지배하에 놓이는 대사건이 생기거나, 힌두교 내의 추세도 시대와 함께 달라집니다. 그런 변화를 크리슈나는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생각해보면「진 여신전생 IV FINAL」에서 중요한 인물인 크리슈나의 존재감은 또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비슈누의 아바타라와 가네샤 신앙, 힌두의 칠모신 등 아직 언급하고픈 요소는 많이 있지만 이번에는 여기까지. 다음에는「신비사상과 악마 사탄」을 다룹니다. 기대해주세요.